침묵
<침묵>
김형수(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아동청소년상담연구소)
지난번에 이어 자녀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부모가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가 하는 일은 임상심리학자가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하는 일들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자녀가 하는 일과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은 ‘관찰’이고,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은 ‘면접’이며, 학업, 진로, 대인관계, 그리고 이런 저런 생활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통해 자녀를 판단을 하는 것은 일종의 ‘검사’와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수록 유능한 부모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누구나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여러 부모님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자녀와의 ‘면접’이 큰 걸림돌이 된다고들 하십니다. ‘면접’이 힘든 이유는 서로 대화가 잘 안통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부모입장에서 더 힘든 것은 자녀가 말을 하지 않는 것 즉, ‘침묵’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녀들과 어렵게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정작 자녀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귀찮아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자녀와의 관계에 다소나마 좌절감과 분노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자녀의 ‘침묵’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물어보면, 대개는 무시, 거절, 비난 등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하십니다. 과연 자녀의 ‘침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찾아보기 위해 어떤 유명한 학자의 얘기를 참고해 볼까 합니다.
칼 로저스는 인간중심접근이라는 상담이론을 만든 대가인데, 그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린 것이 있습니다. 즉, 사람이 자신에 대해 드러내 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얘기를 남에게 하는 것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자기 얘기를 내놓고 해야 하는 고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잘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침묵’하는 것이 존중되고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침묵’이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힘든 것’, ‘말할 수 없는 것’, 또는 ‘말 하지 않겠다는 의지’ 등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 잘 말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하는 사람(자녀)이 자신을 잘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듣는 사람(부모)이 상대방(자녀)에 대해 오해 없이 잘 이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와 마찬가지로 제가 청소년들과 상담을 하면서 고민을 부모에게 얘기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면 대개는 “잘 이해하지 못 할 테니까”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그래서 청소년 자녀와의 대화는 주로 ‘침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칼 로저스의 얘기 상기해 볼 때, ‘침묵’은 대화의 시작이지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녀가 주로 침묵하는 주제는 “말하기 힘든 것‘, ’말할 수 없는 것‘ 또는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일 수 있습니다. 상담자들은 침묵하는 내담자를 만나면 한동안 기다리다가 ”말하기 힘든 내용인가 보군요.“와 같이 말해보도록 배웁니다. 즉, ’침묵‘을 비난하기 보다는 ’침묵‘을 수용해 주도록 배웁니다.
주제가 ‘침묵’이다 보니 오늘따라 추상적인 얘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만일 자녀와 대화를 하고자 하시는데 자녀가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부모님들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침묵’을 수용해 주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로 하는 대화를 잠시 미루시도록 권합니다. 대신 편지, 쪽지 등의 ‘글’이나 핸드폰 ‘문자’메시지, 혹은 이메일 등을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침묵’을 잘 참고 견뎌주면 훌륭한 대화를 한 것 못지않게 부모님과 자녀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녀와 함께 읽어보시도록 유안진씨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익은 생각이나 느낌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가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프로필
이력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육상담전공 박사 수료
경력 - 현)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 특별상담원
호서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교육학과, 유아교육학과 및 아동학과 출강
- 전)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