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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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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9-06-18 00:00 조회수 3,687 영역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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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세발자전거

    글쓴이 : 수필가. 인천시약사회장 김 사 연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이다. 준이 녀석이 약국 금고에 손을 대온 것이 뒤늦게 발각되었다.

    처음에는 동전 한두 개로 시작했으나 요즈음은 만 원권 지폐까지 잡히는 대로 꺼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열 살짜리 녀석의 귀가 시간이 좀 늦는다 싶었다. 간간이 물어 보면 늘 친구네 집에서 숙제를 했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의 책가방을 빨아 주려고 뚜껑을 열던 제 어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달려왔다. 가방 속에는 잡다한 장난감이 수두룩했고 그 밑에는 만 원권과 천 원짜리 지폐가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귀가 시간도 늦고 씀씀이도 헤프다 싶었던 터라 녀석을 불러 다그치기 시작했다. 했더니, 장난감이 필요해서, 친구들과 군것질할 돈이 필요해서 금고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장난감이라면 내 어린 시절의 궁핍을 보상이라도 하듯 남부럽잖게 사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만족치 못했다면 장난감이 아니라 장난감을 필요로 하는 그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십년간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듯 한 허탈감에 눈을 감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그때 그 시절’이라는 흑백 영화를 방영한 적이 있다. 3-40년 전,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민족의 가난했던 시절을 기록했던 내용이다. 그 시간만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와 준이를 텔레비전 앞에 모이게 했다. 흘러간 세월 만치 화면도 낡고 퇴색한 것이었지만 신문지로 도배한 골방에서 몽당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년을 보는 순간 옥수수 빵 배급을 줄서서 기다리던 삼십년 전 내 모습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컨대, 그 누구도 화면 속의 소년처럼 가난할 수가 있고, 또한 그 가난을 딛고 일어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음을 공감하고 싶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더불어 살면서 가난이 주는 교훈을 용케도 전수 받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길바닥에 떨어진 녹슨 못이라도 주어오는 생활신조를 오늘까지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돈에 대한 손장난을 저지른다 해도 내 자식만은 예외라고 굳게 믿어 왔다.

    원래 발명가가 되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자립이 비교적 손쉬운 약사가 된 까닭도 준이에게만은 그 가난을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내 어릴 적의 한풀이나 하려는 듯 뭐든지 거절하지 않고 척척 사주었다.

    세발자전거만 해도 그렇다. 내 어린 시절,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제 형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다가 약국에 고이 간직해 놓았었다. 가난했던 홀어머니에게 그렇게도 철없이 사 달라고 조르던 세발자전거다. 하지만 한 푼이 새로워 이발소 한 번 제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가위로 볼품없이 깎아 주던 어머니가 무슨 돈으로 세발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겠는가.

    가을 운동회 때면 파란 운동모자 하나를 장만하신 후, 청백이 바뀔 적마다 흰 천을 붙여 꿰매 주시던 등잔불 앞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당시 쌀 한 가마 값이었다는 세발자전거를 사 달라고 칭얼댔던 나는 역시 철부지였다.

    더 이상 어머니께 기대를 걸 수 없음을 안 나는 뒤란 참죽나무 아래 머리를 숙이고 매일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세발자전거 하나만 나뭇가지에 매달아 주세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하느님이 보낸 세발자전거가 보이지 않나 싶어 참죽나무에 몇 번이나 기어올랐다. 하지만 가지를 샅샅이 훑어봐도 세발자전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낙심천만한 나는 참죽나무를 타고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팔이 부러지고 온 몸이 쑤셔 댔다. 하지만 끝내 세발자전거의 꿈만은 버리지 못했다. 부러진 그 팔목이 아물어 갈 무렵, 남은 한 팔로 세발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며칠인가에 걸쳐 완성된 자전거는 나무 조각과 깡통으로 만든, 타지는 못하고 끌고 다닐 수밖에 없는 장난감이었다.

    지금, 준이의 충격적인 사건을 대하면서 새삼 두 대의 세발자전거를 비교해 본다. 아버지가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 손수 만들었던 깡통 장난감과, 잘났건 못났건 제 아비가 살아 있는 덕분에 태어나기도 전에 받았던 멋진 선물을.

    그러나 나는 세발자전거의 추억을 결코 가슴에 맺힌 한으로만 간직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난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위하거나 미화시켜 온 것도 아니다. 단지 가난을 죄가 아닌 인생의 정직한 교훈으로 삼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준이를 천 길 만 길 벼랑 끝으로 끌고 온 것만 같다. 지난 십년 동안 내가 준이에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고작 가난은 죄이고 돈은 인생의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과잉보호만이 아비의 사랑인 양 온실의 화초처럼 감쌀 줄만 알았지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갈 잡초의 근성을 키워 주지는 못했으니까.

    아내에게 미안하고 이웃에게 죄스럽다. 지금까지 나의 어머니를 몰인정한 분이라고 원망만 해 왔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세발자전거를 못 사준 어머니, 파란 운동모자에 흰 천을 덧붙여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했던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인다. 그리고 감사한다.

    내가 준이를 대하듯 만일 어머님이 나를 감싸주기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정받는 약사가 되기는커녕 대학이나마 졸업하고 직장 생활이나 가능했을까?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에게 매를 준다던 옛말의 심오한 의미를 알 것만 같다. 가난의 채찍으로 가르쳐 준 어머니의 사랑은 나만의 것일 수 없다. 내가 세발자전거를 통해 자립심을 배웠듯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준이를 일으켜 세워 주기보다는 스스로 일어나 그 아픔을 삭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길러 줘야 겠다.

    준이가 꺼내 쓴 약국 금고의 돈은 아무렇게나 써 버려도 될 제 아비의 돈이 아니다. 유복자로 키운 철부지 아들이 그렇게도 원했던 세발자전거를 차마 사주지 못하고 가슴 태운 내 어머니의 눈물이다. 한숨이다.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교훈을 떠올리며 신문에 껴 오는 광고 전단을 버리지 않고 묶어서 연습장으로 쓰게 한다.

    또한 길에 떨어진 녹슨 못 하나가 아까워 흙먼지 채 주머니에 넣어 오지만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기꺼이 장학금을 베풀어 오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 까닭이 없는 녀석이지만, 한 푼을 절약하기 위해 이 빠진 가위로 내 머리칼을 쥐어뜯을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나보다 더 아팠으리란 사실을 내가 뒤늦게 깨달았듯이, 준이 역시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준이를 통해 내 어린 날의 불만을 보상하려 했던 과오도 솔직히 반성하며 내 자신에게도 회초리를 들어야 겠다.

    * 이 작품은 필자가 20년 전에 쓴 글입니다. 아들은 지금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럽한 후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