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나눔

부모칼럼

부모의 즐거운 인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7-11-12 00:00 조회수 6,370 영역 정보제공

본문

  • 저자 :
  • 약력 :

  • <부모의 즐거운 인생>

    지승희(한국청소년상담원 부교수)


    오랜만에 고3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친구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네 명의 남자가 주인공인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입니다. 똑똑한 아들 덕분에 낮에는 퀵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바쁜 가장 성욱씨,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아이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혁수씨, 정리해고 당하고 주식하다 빚만 잔뜩 진 백수 기영씨. 먹고 살기 바쁜 애환 가득한 중년의 세 남자가 밴드를 하겠다고 뭉친 겁니다. 우리도 젊었을 때는 대학가요제 3년 연속 탈락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밴드 ‘활화산’의 멤버가 아니었느냐 하면서요.

    보컬이었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아들 현준군의 도움을 받아 이 어설픈 아저씨들은 홍대앞 클럽무대에도 서고, 공연도 하게 됩니다. 죽은 친구가 지은 곡에 기영씨가 가사를 붙인 ‘즐거운 인생’을 즐겁게 부르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 전까지의 내용은 조금 슬펐습니다. 성욱씨의 부인은 밤낮으로 뛰는 남편에게 아이 성적 오른 이야기, 좋은 학원 보내야겠다는 말만 하고, 성욱씨가 나도 하고 싶은 거좀 하겠다고 하니 나는 나 하고 싶은 거 하는 줄 아냐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기러기 아빠 혁수씨는 이혼통보까지 받고, 부인 잘 만나 백수로도 버틸 수 있는 복많은 남자 기영씨도 ‘백수보다 밴드하는 게 낫지’라는 아이의 한 마디에 얼굴이 환해지는 어깨 쳐진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 명의 아버지들은 오직 자식 교육 뒷바라지에 인생을 걸고 있는 모든 부모의 모습이었습니다.

    고3 수험생을 둔 친구는 허리띠 졸라가며 과외비 대는 건 기본이고, 수험생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에 신경질 받아주기,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 깨워 학교보내기, 살살 달래 밥 먹이기, 독서실 끊어주기, 기분 전환 필요하다 하면 외식 시키고 옷 사주고 엽기적인 행태들도 봐주고...아이가 공부 좀 하는 거 같으면 그날은 천국이고 인터넷이나 하고 있으면 바로 지옥입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친구의 모습은 영낙 없는 어린아이입니다. 생각만큼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니 친구 얼굴에는 기미가 덮이기 시작하네요. 수능은 다가오는데 하루하루 혀가 마르고 애가 타는 건 엄마고 아이는 성적표도 보여주질 않는다니.. 허무하고 원통하기까지 하지 않을까요? 더 겁이 나는 건 이런 짓을 한 해 더 할지도 모른다는 것과 그렇게 해도 성과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옆에 앉은 친구를 비롯한 많은 고3, 재수생 엄마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모든 것을 접고 수험생 뒷바라지에 올인하는 그들의 모습, 왜 수험생의 어머니, 아버지는 꿈을 꾸면 안되는 것인지... 왜 자녀가 수험생이 되면 온 가족이 비상이 되어 모든 것을 접고 올인해야 하는 것인지... 이것이 정상인지..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인지.. 그것이 확실한지 모든 것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수험생은 왕처럼 군림하는데 이것도 정상인가요?

    영화에서는 20대의 현준군이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합니다. 그들은 함께 참 즐겁게 어울리고 눈빛으로, 몇 마디 말로 서로의 애환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더군요. 부모의 꿈을 위해서는 자녀가 희생될 수 밖에 없으니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맞다고 강요하는 세상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엄마와 딸이 함께 서로의 꿈을 나누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돕고 그렇게 살 수도 있다고, 함께 즐겁게 인생을 노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왠지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 같은 고3 엄마, 한 해로는 부족해 2년째 뒷바라지에 속이 시커멓다 못해 얼굴까지 시커매지고 동창들 만나기도 부끄럽다는 재수생 엄마 친구들... 위로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얼마 안남은 수능, 최선을 다한 수험생 부모님들...모두 함께 소리 높여 우리의 ‘즐거운 인생’을 노래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