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나눔

부모칼럼

스스로 나비가 되도록 지켜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7-10-01 00:00 조회수 6,120 영역 가족

본문

  • 저자 :
  • 약력 :

  • <스스로 나비가 되도록 지켜주기>

    지승희(한국청소년상담원 부교수)

    “아이에게 올인하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만난 어느 어머니의 말입니다. “그동안 아이를 많이 돌보지 못했어요. 이제 중학교에 갈텐데 지금 아이에게 전념하면 아이가 더 잘할 거 같아요.” 이상하게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말 같았습니다. “아이가 머리가 있고 부모가 조금만 밀어주면 될 거 같으니까 열심히 해줘야지” 열심히 정말 열심히 아이보다 앞서 생각해주고 길은 부모가 닦아줄 터이니 너는 따라오기만 하면 된단다 했던 어느 어머니의 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긴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대학에서의 학업부터 졸업 후의 진로를 정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해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싶었다’는 또 다른 어머니는 고속도로가 숨막힌다고 밖으로 튕겨나간 아이의 일탈행동에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일까요? 극단적이긴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올인’하는 것, 시행착오는 No! 절대 안되니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에릭슨은 청소년기의 과제는 자아정체감 형성이라고 했습니다. 자아정체감이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자기 나름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와 함께 시작되는 청소년기는 신체적인 변화로 인한 혼란, 정서적 예민함이 특징입니다. 급변하는 자신에게 적응하고 성장해야 하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가는 이 단계는 공중곡예를 하는 곡예사의 팽팽한 긴장상태와도 같다고 합니다. 갑자기 키가 쑥 크면서 긍정적인 신체상으로 자존감이 상종가를 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성장이 지연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합니다. 친구와 비교해서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학업에서의 성취는 자존감을 높여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심한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구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지나가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 공부밖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청소년기가 정말 좋은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청소년이 된다면 정말 공부만 해보겠다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나쁜 줄 뻔히 알면서도 호기심으로 혹은 스트레스로 흡연을 하는 아이들, 자기 화를 견디지 못해 문을 뻥뻥 차대는 아이들, 친구가 좋아 게임에도 빠지고 가출도 하는 아이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청소년기를 겪는 아이들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저기압성 폭풍, 토네이도에 휘말린 것 같습니다. 아니 아이 자체가 광풍 같습니다. 토네이도가 지나가면 나무도 자동차도 공중으로 휙휙 떠다니지 않습니까? 올인해서 고속도로 깔던 부모에게 이런 토네이도는 날벼락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 착하던 아이가 왜 저렇게 됐을까, 매일매일이 전쟁입니다.

    공중곡예와도 같은 과정을 잘 지나면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과제라면 이 질풍노도와도 같은 혹은 토네이도와 같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겠네요. 토네이도에 휘말려 올라가지 않으려면 멀리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 시기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거리, 즉 가깝긴 하지만 손을 뻗을 수 있는 여유,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확립해가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힘과 지식을 활용하며 주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보기에 더디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뻔히 보이는 길을 두고 이리저리 우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누구도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오는 고군분투가 안쓰러워 고치를 열어주면 애벌레로 죽고 만다는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쓰러워도 방법을 알고 있어도 별 수 없이 아이들 스스로 고치를 벗고 아름다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