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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칼럼

본대로 자라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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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7-09-03 00:00 조회수 6,544 영역 학업/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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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대로 자라나는 아이>

    김은경(성우심리상담소 소장)

    아이들은 부모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의 수없이 많은 지시와 충고를 들어가며 자란다. ‘위험해, 하지 마’ ‘고운 말 써라’ ‘싸우지 마’ ‘공부해’ ‘정리정돈 해’ ‘거짓말 하지 마’ ‘양보해라’ 등등 부모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 한다. 아이가 한 번에 말을 알아듣고 그대로 행동해 준다면 고맙겠는데, 크면 클 수록 부모의 말발은 아이에게 먹히지 않고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을 하고 또 하다 보면 급기야 ‘잔소리쟁이’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엄마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으나,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듣는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의 말은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엄마말대로 행동해준다면 아이도 좋고 엄마도 행복하련만 어째 아이들은 하나같이 엄마 말을 안 듣는 것일까?

    우리 집 아이들도 영락없이 말을 안 듣는다. 어릴 적에는 이유를 대지 않고 막무가내로 말을 안 듣더니 요즘은 좀 컸다고 또박또박 이유를 대가며 엄마 말에 반항을 하고 있다. 동생과 싸우지 말라고 하면, ‘엄마도 아빠랑 싸우잖아’,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으라 하면, ‘엄마도 입맛 없다고 안먹잖아’, 시험성적이 형편없어서 야단을 치면, ‘엄마는 어릴 때 공부 잘 했어? 건강하게 잘 뛰어 노는 게 더 좋다며?’ 라고 대꾸한다.

    아직은 애기 같은 얼굴을 하고 야무지게 따져대는 아이를 보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정말 어른으로써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어쩔 수 없이 뽑아 드는 칼이 효도(孝道)이다.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이 자식의 도리(道理)이니라! 점잖빼고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너! 엄마가 니 친구야? 버릇없이 말대꾸 하지 마, 엄마 밑에 있을 땐 엄마 말 들엇!’. 호통으로 아이를 제압하고 나서 삐죽대며 말을 듣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자면 나는 또 한번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어른이라고 큰소리를 쳐대기는 했는데, 정말 아이에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게 맞나? 어쩌면 자기 행동에 이유를 대고 있는 아이보다도 못하게 막무가내로 우겨댄 것은 아닐까? 무조건 ‘어른이니까’ 라며....
    곰곰이 어른으로써의 내 모습을 반성해 보니, 어려 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어릴 때 엄마 눈 피해 놀기 바빴지 공부는 뒷전이었고, 입이 짧아 복스럽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고, 성질이 급해서 남편과 대판 붙어서 소리치는 모습도 종종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급하게 출근하며 화장실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잠옷하며, 신혼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설픈 살림솜씨에 썩어서 버려지는 음식들,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들.... 지금 애들보고 뭐라 할 형편이 아니다 싶다.

    ‘그래,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시키지 말자. 대신 내가 잘 하는 것을 아이에게 자랑하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내가 아이이게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없는 가운데도 몇 가지가 떠올랐다. 상담심리학자로써 내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것,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나를 관리하는 것, 내가 선택한 일은 스스로 책임지고 하는 것(사실 나도 잔소리 듣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내 아이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것.

    애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고, 그래가지고 바르게 자랄까 염려하는 마음에 잔소리가 튀어나오려 할 때, 이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는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선택은 네가 하렴. 난 결국에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네가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어른이 될 거라고 믿는다’. 믿는다는 말이 하라는 말보다 더 무섭다며 살짝 흘기는 딸아이의 눈빛에서 사랑과 신뢰를 느끼며, 잔소리쟁이 엄마는 안심하고 잔소리를 멈출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말한 대로 자라지 않고, 어른이 보여 준 대로 자란다는 옛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겠다. 말 안듣는 아이를 키우는 고단한 엄마에서 자발적인 아이를 둔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