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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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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7-06-11 00:00 조회수 6,424 영역 정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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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려주기>

    여재훈 신부(인천 청소년자활지원관)

    그 아이와 인연을 맺은지 올해로 딱 10년입니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에 해맑은 웃음이 멋들어졌던 종수(가명)는 올해로 24살입니다. 14살 때 그 아이를 만났던 곳은 집나온 아이를 보호하던 가출 청소년 쉼터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아이는 그곳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다른 가출청소년들과는 무언가 좀 다른 느낌이었지요. 선생님들을 통해 종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새엄마, 알콜릭에 가정폭력이 심했던 아버지, 가난한 가정환경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성장하였답니다. 음주후 폭력이 극심했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골절상을 입기까지 폭력을 휘둘렀고 급기야 아이들은 집에서 살수 없어 이리저리 흩어져 지내다 쉼터에서 생활하게 된거지요.

    이러한 환경 때문에 너무 일찍 성숙해져 버린 종수는 자기가 가진 꿈을 버리지 않고 나름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새벽의 신문배달과 학교생활을 병행했으며, 또래아이들에 비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온전한 가정과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환경 탓인지 그의 삶은 어두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였습니다. 18살에 쉼터를 떠나 절도와 폭력, 동거 등으로 전전하다 결국 20살에 교도소까지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까지 쉼터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6개월여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사회에 나온 아이는 바로 지원입대 하였습니다. 주위에서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애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엇나가는 것 같은 부담과 영영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이 종수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몇달전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른스러워진 말투와 성숙해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종수였습니다. 군제대후 제가 있던 쉼터에 야간숙직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종수의 목소리는 자랑하듯 들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군대가 사람 만들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는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말입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을 흔히 럭비공에 비유합니다.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대화를 나누기도 혹은 감정을 읽어내기도 참 어렵습니다. 조울증 환자 마냥 하루종일 우울해 할 때도 있고 하루종일 들떠 있는 모습이 반복되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도 모르게 되지요. 부모님들 뿐만 아니라 상담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전문가 선생님들도 이시기의 아이들과 대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만나시는 분들은 이시기의 아이들에게 억지로 대화를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신뢰를 얻을수 있도록 지지와 허용으로 그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옆에서 지켜봐 줍니다. 확고한 신뢰와 한없는 호감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가 자신의 울타리를 열도록 기다려 줍니다.

    우리는 그 시기의 아이들이 무조건 나의 통제와 그늘 안에 머무르길 원합니다. 간섭하고 조정하고 심지어 삶의 진로와 방향까지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그 계획에서 이탈할 경우에 체벌과 비난을 쏟아내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서 라는 명분으로 행하지만 결국 나 자신의 만족이 중심에 있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략 체념과 반항이라는 두가지 일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반항을 선택하지만 정작 문제는 체념하는 아이들에게 더 있습니다. 발산되지 않고 가슴에 쌓이면 언젠가 터지거나 썩기 때문입니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는 따뜻한 눈빛과 긴 숨으로 항상 옆에서 기다려주는 인내있는 가족과 이웃이 꼭 필요합니다. 그들은 아이가 혼자 걷다가 걸려 넘어질때 붙잡는 버팀목이 되며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만큼 반응하여 아이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조급하게 앞일을 예상하고 미리 포기하거나, 너무 많은 기대로 부담을 주기보다는 항상 자리를 지켜는 지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그 신실함과 진실함이 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커다란 나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더운날 그늘이 되어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며 숲속에서 함께 살아감을 가르쳐줄 커다란 나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