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나눔

부모칼럼

삐딱이論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7-02-12 00:00 조회수 6,492 영역 정보제공

본문

  • 저자 :
  • 약력 :

  • <삐딱이論>


    유사랑

    얼마 전 속리산 법주사를 우연히(?) 다녀오게 되었다. 구태여 ‘우연’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 속리산 줄기인 백악산 산행이 목표였는데 네비게이션의 지시에 습관적으로 반항하길 즐기는 내 삐딱이 기질 탓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엉뚱한 법주사 구경만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라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획 비틀고 싶어지는 유혹에 그날도 넘어가고 만 것이다. 내 딴에는 지름길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인데, 쩝.......! 덕분에 법주사 입구 다리 위에서 시냇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 떼의 유영을 한가로이 지켜보기도 했고, 팔상전의 부처일생이 담긴 탱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여유도 만끽했으니 목표했던 백악산 산행과는 또 다른 속리(俗離-속세를 떠남)의 맛을 넉넉히 즐길 수가 있었다.
    이렇듯 살다보면 때론 전혀 엉뚱한 길을 치달려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그런 경우의 태반은 불쑥불쑥 고개 디미는 예의 삐딱이 기질 탓이지만.

    세상일에 쉬이 순응하지 못하는 내 삐딱이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 아들놈 역시 머리가 굵어갈 수록 매사에 삐딱하다. 정신발달 단계상 반항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을 나이인데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다소곳이 순화(馴化)되는 법이 없다. 타일러도 보고 윽박질러도 봤지만 부자간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 도통 말빨(?)이 먹히질 않는다. 그래, 세상 사는데 삐딱이 기질이 없어도 문제이겠거니 싶어 한발 물러서 편하게 봐주기로 작정했다. 옛말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질 않던가?

    사실 인류의 진보는 수많은 삐딱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거스름’에 있다. 가뭄을 당연한 것(自然)으로 순응하기보다는 댐을 만들어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는 것(不自然)으로 거스름으로써 인류가 생존 가능했던 것처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로켓으로 인간이 우주로 날아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무조건 세상이치에 순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오던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한다’는 진리는 이제 용도 폐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등용문(登龍門)’의 고사는 성공을 위해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약간 불온하게 해석하자면, 시류를 거스를 줄 아는 ‘삐딱이’가 되라는 채근이다. 인간은 눈가리개를 한 채 오로지 정해진 한 방향으로만 내달려야하는 경주마가 아니다. 자녀의 교육이나 가치관 계도가 말 잘 듣는 경주마로의 순치(馴致)일순 없다. 물론 등용문의 이면에는 항상 ‘점액(點額)’의 부담이 상존한다. ‘점액’이란 용문(龍門)에 오르려 급류를 거스르다 바위에 이마를 찧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또한 시류에 편승하는 것, 곧 거스를 줄 모르는 물고기는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는 역설의 의미이다.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기업. 한 때 유행했던 모 회사의 광고카피다. 바로 만천하에 삐딱이가 되겠다는 공약을 한 셈인데, 어쩌면 이 사회는 겉으로는 ‘모범생’을 맘속으로는 ‘삐딱이’를 선호하는 표리부동의 누습(陋習)을 미덕이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 유사랑 프로필
    - 인하대학교 교육학 석사
    - 문화일보, 서울경제신문, 중앙일보 등 주요일간지에 시사 평론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