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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칼럼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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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희창 등록일 06-06-07 00:00 조회수 5,191 영역 대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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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속 깊은 얘기 털어놓을 친구 없을지라도

    한 학기 내내 책 한권 들고만 다녔을지라도

    막차 놓치고 학교까지 십 리길 걸어올지라도

    꼬이기만 하는데 화장실 청소까지 걸릴지라도

    꽉 막힌 쌤들과 뻔한 얘기로 티격태격할지라도

    야심 차게 세운 계획 헛방이 될지라도

    나만 잘하면 뭘 해, 맨 날 손해만 볼지라도

    땡땡이치고 낮잠 자다 침 흘릴지라도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내 친구만 좋아할지라도

    배고파 죽겠는데 싫어하는 반찬만 나올지라도

    하필이면 못살게 구는 선배가 방장이 될지라도

    얘기하고 싶은데 쌤들은 잔소리만 늘어놓을지라도

    꼭 하고 싶은 걸 친구가 더 잘 할지라도

    돼지우리 기숙사가 지긋지긋할지라도

    우리 아빤 왜 이렇게 꽉 막혔을까 짜증날지라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더 형편없을지라도

    한 해가 다가도록 아무 것도 한 게 없을지라도

    남아있는 재주가 개기는 것밖에 없을지라도

    답답하고 졸리고 짜증날지라도


    산다는 게 ~지라도 이니까
    판도라의 상자도 ~지라도 상자
    우리네 인생은 ~지라도

    한 해를 보내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면서 긁적거린 랩 가사랍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랩을 창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저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을 테지만, 저 혼자 주절거려 보는 거죠.

    한 해를 보내면서 때로는 신나하고 깔깔거리지만 일상의 단조로움에, 관계의 허전함속에 엄청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교사로서 느끼는 뼈저린 한계를 느낀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언제일까요? 무언가를 어렵게 성취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에서, 아니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만족감에서, 그런 추상적인 것보다는 간절히 소원하던 물건을 갖게 되었을 때? 돈을 많이 벌었을 때?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 부를때? 언제일까요?

    항상 삶이란 부족하고 부적절합니다. 항상 불만이고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나 자신을 돌아보면 만족할 것이 하나도 없지요.
    그래서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새로운 해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데 세상은 떠들썩하고 화려한것,
    멋진 것만 이야기합니다.

    ~지라도의 아이들과 ~지라도의 교사들이 이렇게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이 한 해를 ~지라도의 삶을 보냈습니다. 그렇다할지라도 내
    년에 우리들은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지라도의 인생을 가늘게 이어갈 것입니다.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