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폭력 피해 이해하고 대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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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4-12-11 18:02 조회수 550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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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여성학 박사수료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공저
지난여름, 딥페이크 영상을 이용한 성폭력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딥페이크는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AI의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촬영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 내는 기술입니다. 2017년 미국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의 얼굴을 다른 영상에 입힌 가짜 콘텐츠를 게재하면서 딥페이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그로부터 7년 후 딥페이크는 우리의 일상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학교를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이 알려지면서,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건 해결을 위한 지도 그리기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관련한 자료와 증거들을 모으면서 사건 해결을 위한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해 합성물은 주로 텔레그램이나 X(구 트위터) 등의 익명화된 소셜미디어나 메신저의 링크를 통해 유포되기 때문에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피해를 알게 된 그 지점에서부터 따라가다 보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누군가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등을 추적하며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 과정을 화면 캡처, 다운로드, 카카오톡·텔레그램의 ‘내보내기’ 기능을 활용해서 잘 수집해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에 의해 피해가 발생했거나, 모르는 사람이 접근할 경우에는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증거나 정황을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출처: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인스타그램)
피해를 확인하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경찰 신고(고소)가 가장 우선적인 조치가 되겠지만, 유포가 학생들 간의 또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피해자/가해자가 소속된 학교를 통한 해결을 고민해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이 해결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피해 회복을 위해서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탐색해 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또한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상담전화: 032-518-5170)와 같은 지역별 디지털성폭력 대응센터를 통해 상담받을 경우, 삭제지원 이외에도 법률지원과 피해 회복을 위한 상담/치료 프로그램들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나갈 수는 없기 때문에 부모님, 담임교사, 친밀한 친구 등의 조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대처방안과 관련 기관들을 알려주고, 자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부분에서 누구의 조력이 필요할지를 자녀와 의논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님의 역할일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면 딥페이크 성폭력에서 안전할까?
여타의 폭력·범죄 피해와는 구분되는 성폭력 피해의 특징은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는 두려움 등을 강하게 느낍니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피해자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발생하지만, 피해자들은 ‘내가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라는 것에서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폭력 피해의 원인은 가해자의 잘못에서 비롯되었고, 피해자가 사진이나 영상을 올렸다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비공개하거나 사진을 올리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예방책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안 피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피해 합성물이 어디에 유포가 된 것인지, 누가 제작물을 만든 것인지, 누가 그것을 보았는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불안이 가중됩니다. 이러한 불안은 주변에서 볼 때는 다소 과도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성폭력의 또 다른 특징으로 ‘불안 피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피해 자녀의 회복을 기다리고 응원하는 것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50% 이상은 3개월 이내에 심리적으로 회복하고, 대부분은 1~2년 이내에 회복되게 됩니다. 회복되기까지의 시간에는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학원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그 이유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의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들어주시고, 해결책이나 대안을 같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부모님이 상처받을까 봐, 혹은 부모님에게 상처받을까 봐 부모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기도 합니다. 그럴 땐 ‘너를 탓하지 않는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움을 나누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자녀를 기다려 주세요. 스스로 회복해 나가는 시간을 응원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양육자의 최선의 역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