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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칼럼

자아의 집을 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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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채은 등록일 06-07-04 00:00 조회수 6,224 영역 학업/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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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곧 눈발이라도 날릴 듯이 구름이 잔뜩 드리운 겨울이었다.

    “안녕하세요. 얘가 선물로 드린다고 고른 거예요.”

    아이가 어깨를 움츠리고 눈을 피하며 쑥스러운 듯이 손에 들었던 선인장을 내밀었다. 선인장은 사막에서도 견뎌내는 두툼한 줄기와 억센 가시가 아니라 가냘픈 줄기에 솜털 같은 가시가 둘러싸고 있었다.연약한 자아가 스스로를 지키고자 절실히 호소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듯했다.

    병현이는 발육상태는 건강한 편이었으나 첫 눈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을 수시로 움찔 거리고, 얼굴 근육과 눈까풀이 씰룩 거렸다.혼잣말을 하는 듯이 뭔가 중얼 거리기도 하고 신경이 쓰일 만큼 킁킁 소리를 내면서 산만하게 방안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흔히 만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거나 '틱(Tic)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틱(Tic)이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주 반복해서 근육을 움직이며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을 말한다. 틱 장애는 증상에 따라 음성틱, 운동틱, 투렛장애로 나타난다 틱장애의 원인에 관해서는 유전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심리적인요인 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10명 중 1명 정도가 틱장애를 보이는데, 대개 몇 주에서 몇 달 지속되다가 낫기도 하고,흥분하거나 긴장, 피곤한 상태에서 더 심해 지기도 한다. 만일 1년 이상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가 약물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병현이가 받은 진단명인 투렛장애는 음성틱과 운동틱이 동시에 나타난다.
    미술치료를 하는 동안은 틱 증상이 현저하게 감소하는데 아마도 미술활동에의 집중으로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는 신체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통해 불안을 감소시키려는 신경물질의 작용이 줄어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병현이는 초등하교 입학 무렵 자꾸만 킁킁거리고 어깨를 움찔거려서 소아과와 이비인후과도 가보고 X_ray도 찍고 약도 먹여보았으나 차도가 없었고, 두통과 구토마저 일으켜 MRI촬영을 해도 이상이 없어서 심리검사를 받게 되었다.

    아이의 증상은 자신의 마음 속 상처를 밖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한 방법이며, 정서장애로 인한 투렛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아이가 이렇게 심각한 정서정애가 된것은 부모의 이혼과 그에 따른 엄마?우울증이 크게 작용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엄마가 아이를 위하여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제공
    하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이혼 후 분노와 좌절의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엄마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이를 때리고 심한 말로 상처를 주었다.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


    미술치료실에 다녀온 병현이가 옆집 아이에게 천국같은 곳에 갔었다는 말을 했다는데 새로이 발견한 공간이 희망과 힘을 불어넣어주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안전하게 느끼는 곳을 필요로 한다. 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신적 안식처’는 언제든지 원할 때 들어갈 수 있다.

    병현이는 유난히 집을 많이 만들었다. 자신이 살집이라면서 이층집을 만들고 그 안에 침실과 거실과 놀이방을 꾸미고 바느질로 침구까지 만들어 놓곤 했다.

    미술치료는 미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눌리고 멍든 감정을 마음껏 풀어내기도 하고, 억압된 소망을 펼치기도 하면서 다양한 주제와 재료로 그리고 만드는 과정들은 개인적인 특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므로 유능감과 성취감을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한다.병현이는 그 깊은 우울과 아픈 심정을 말로는 다 할 수 없었지만 미술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그 어떤 말보다 더 생생하게 자기의 고통과 소망을 그려내었다.

    투렛장애가 유전이나 뇌기능 이상이 아니고 심적 스트레스에 의한 정서장애라면 미술치료가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고 사실 병현이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건강하고 멋진 소년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삶의 터전에서 그스스로가 자아를 위해 지어낸 집들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치료적 자원이었다.

    부모자녀 관계는 부모가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라자녀도 부모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작용의 관계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삶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거나 반성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함께 그림치료를 받은 엄마는 병현이의 변화를 보면서 인터넷상에서 틱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을 위하여 홈 페이지를 만들어서 활발히 활동도 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사례아동의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