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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는 기구가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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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우남(상담팀) 등록일 19-12-17 15:16 조회수 3,159 영역 정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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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
  • 이수정
  • 약력 :
  • 前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 상임이사
  • 평소에는 학교 주변에서나 가끔 보던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거리로 몰려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학교 시험기간이 끝난 때라거나 연말연시같은 때이지요. 어른들로 치면 마치 고된 일을 마치고 회식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청소년들이 주로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한리필이 가능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평소에 봐 둔 예쁜 까페에 가서 모처럼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대학가로 가서 길거리 쇼핑도 하고 동전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날은 평소 모아 두었던 용돈을 마음껏 쓰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깝기도 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포기할 수 없기에 ‘탕진잼’이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 주변에 청소년을 위한 공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문화의집,청소년상담센터,복지센터,성문화센터,위센터,청소년까페 등등. 그러나 그런 곳에 가보면 소수의 청소년만 보일 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거리를 배회하며 자신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습니다. 저렇게나 다양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있는데 이들은 왜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요?

     

    우선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특화된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기에 쉽게 찾아가게 되지 않습니다. 관련된 프로그램을 사전에 신청해야 하고, 특정한 계층에 속해 있어야 하고, 때로는 비용도 들어가기도 해서 아마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돈만 있으면 드나들 수 있고 언제든 자신들의 욕구에 따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거리를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청소년들의 정책제안에도 나와 있듯이 누구나(특별한 사정에 관계없이) 갈 수 있고 쉽게 갈 수 있는 자신들만의 공간에 대한 그들의 목소리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어디는 여성가족부 소관, 어디는 보건복지부 소관이라는 식으로 나누고 여기 상담, 저기는 복지, 거기는 문화 등등으로 쪼개는 방식은 오히려 이용을 어렵게 합니다. 차라리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을 가까이에 두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중심에 ‘놀이터’가 있으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 집과 다름없는 실내공간 위주의 센터보다는 야외공간이 있는 놀이터를 더 선호합니다. 또 놀이는 개개인의 속사정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하게 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모든 욕구와 개인의 필요를 놀이터에서부터 풀어 놓게 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과 같은 놀이터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놀이터 이야기 한 번 들어 봐 주시겠습니까?

     

    “마을 가운데 공원이 있고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니 놀이터가 있습니다. 놀이기구는 별로 없지만 마음껏 뛰놀수 있는 공터와 흙놀이터, 나무 그네 등 자연에 가까운 놀이터입니다. 놀이터 한쪽에는 텃밭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작은 동물들의 집도 있네요. 그리고 사방이 야외로 연결된 작은 건물도 있습니다. 창고엔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잇감들이 쌓여있고, 쉼터엔 읽을 수 있는 책들과 편안한 의자들도 있습니다. 한쪽 사무실에는 놀이활동가, 청소년상담 및 복지 담당자가 있습니다. 관련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도와줄 분들이고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연계할 분들입니다.

    아침을 먹고 난 아기들과 엄마 혹은 아빠들이 놀이터에 들어섭니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아이들은 흙놀이, 나무자동차타기 등에 여념이 없고, 부모들은 바로 옆 평상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 어제 아이와 읽은 그림책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고 점심때가 되자 모두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습니다. 한쪽 텃밭에서는 마을주민들이 텃밭을 가꾸고 동물들을 들여다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어린 아기들은 낮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놀러 왔습니다. 소꿉놀이도 하고 나무에 맨 그네도 타고, 사방치기도 하고 한쪽에선 놀이활동가와 함께 뚝딱뚝딱 못질과 톱질을 하며 놀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들어옵니다. 익숙한 듯 사무실 옆 작은 쉼터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하고, 엎드려 친구와 이야기도 나눕니다. 좀 더 활동적인 아이들은 이미 놀고 있는 동생들과 어울려 같이 놀기도 하고 동생들의 놀이를 도와주는 역할도 합니다. 또 동물들을 돌보고 먹이를 챙겨주기도 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놀이활동가에게 허락을 받고 마당 한쪽에 마련된 불을 피우는 공간에서 연기를 마셔가며 불을 피우느라 바쁩니다. 또 다른 친구들을 그 불에 구워 먹을 것을 꺼내 와서 손질을 합니다. 맛있는 냄새에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모여듭니다. 즐겁게 나눠 먹고, 청소년들은 스스로 뒷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 있을 마을축제 준비를 하러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어느 사이 퇴근한 부모님들, 마을활동가들이 함께 회의를 하기 위해 놀이터를 들어서고 있습니다....”

          

    놀이터라고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들, 휑하니 비어 있는 강렬한 색상의 플라스틱 놀이기구들, 학원가는 길에 몇몇 아이들이 짬짬이 들러 수다떠는 곳, 어르신들이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장소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가서 맘껏 뛰놀지 못하도록 설계된 곳이 태반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놀이터는 사실 그 쓰임을 십분의 일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험한 세상이 무섭다고 놀이터에 혼자 아이를 보내지 못해서 하루 종일 실내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입니다. 해야 할 공부가 산더미처럼 있다고 하루 종일 책만 보게 하는 것은 학대입니다. 마음껏 뛰놀 수 있되 필요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나들며 어린이청소년을 중심으로 어울려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마을 놀이터가 될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놀이터에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